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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불안보다 창피함이 더 무서웠던 내 마음의 기록

by sabujac-life 2025. 5. 19.

퇴사후 불안보다 창피함이 더 무서웠던 내 마음의 기록
퇴사로 인해 불안과 창미함으로 세상과 단절

퇴사를 결심했던 날, 나는 단지 ‘불안’을 각오했다고 생각했다. 돈이 없고, 시간이 많아지고, 주변과 단절될 거라는 예측은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진짜 두려웠던 감정은 다름 아닌 ‘창피함’이었다. 무언가를 잃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그만뒀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이 더 무서웠다. 이 글은 퇴사 후 겪은 감정의 변곡점들, 그중에서도 ‘부끄러움’이라는 감정과의 싸움을 다룬 기록이다.

1. 퇴사 직후, 예상하지 못한 감정의 실체

① 퇴사 후에도 직장인처럼 굴던 나

퇴사 직후 나는 이상하리만큼 똑같은 루틴을 유지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고, 9시까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겉으로는 자유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고민했다. 누군가 내 SNS에 “요즘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을까 두려워 잠시 로그아웃하기도 했다.

가장 두려웠던 건 ‘직장인이 아닌 나’의 정체성이었다. ‘백수’라는 말은 왜 이렇게 무겁고 창피할까. 사회적 소속이 사라지자, 마치 내가 무능력해진 듯한 착각이 몰려왔다. 심지어 은행에 대출 상담을 받으러 갈 때도 괜히 옷을 정장처럼 입고 갔다. 스스로조차 나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② “왜 그만뒀어?”라는 질문에 말을 잃다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들과의 대화였다. “요즘 뭐해요?” “일은 계속 하시나요?” “다른 데로 옮기신 거예요?”라는 질문은 악의 없지만 나에게는 칼날 같았다. 나는 “쉬고 있어요”라는 말 대신 “이직 준비 중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게 덜 창피했기 때문이다.

창피함은 실패에 대한 감정보다 더 끈질겼다. 나는 실패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날 어떻게 볼까’라는 감정이 모든 선택을 뒤흔들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불안은 예상할 수 있고, 준비할 수 있지만, 창피함은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직접 건드리는 감정이라는 것을.

2. 창피함이라는 감정의 뿌리를 들여다보다

① 내 안의 ‘직장 중심 사고’ 해체하기

나는 늘 좋은 대학, 좋은 회사,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기준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믿었고, 나도 거기서 성공해왔다. 그런데 퇴사 후 그 틀에서 벗어나자, 나는 마치 사회의 바깥으로 밀려난 느낌을 받았다. 내 정체성이 ‘소속’에 너무 의존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존감이 무너졌던 게 아니라, 자존감의 ‘기반’이 허술했던 거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이 내 자존감을 지탱해왔다는 걸, 나는 퇴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퇴사 후 더 창피했던 것이다. 나는 '소속 없는 나'를 견디는 법을 몰랐다.

② 나의 ‘평판 불안’은 어디서 왔을까?

창피함은 타인의 시선에서만 비롯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을 확대 재생산한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평가에 늘 민감했고, 스스로에게조차 ‘잘 나가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강요해왔다. 타인이 날 무시할까 두려워했지만, 사실은 내가 나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감정을 마주하면서 나는 내면에서 처음으로 ‘일’과 ‘존재’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이 없어도 나는 의미 있는 존재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나에게 오래도록 무겁게 남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회복의 시작이 되었다.

3. 창피함을 넘어선 회복의 루틴들

① 나는 백수가 아니라, ‘무직연습자’였다

어느 날부터 나는 스스로를 ‘백수’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무직 연습자’라는 말을 썼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일하지 않기’를 연습 중이라는 의미였다. 이 작은 언어의 전환은 내 감정을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백수라는 단어에 내포된 부정성을 걷어내자, 비로소 나는 스스로를 다시 설계할 수 있었다.

그 시기에 나는 매일 일기를 썼고, 혼자 걷기 시작했고,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아무 성과도 없었지만, 감정은 조금씩 정돈되었다. 그리고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까’보다 ‘내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가’를 기준으로 하루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②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를 만드는 법

하루 종일 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내가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일하지 않아도 ‘사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식사를 준비하고, 책을 읽고, 창밖을 바라보고, 커피를 내리는 일상 속에도 충분히 존재의 무게가 있다는 걸 말이다.

이후 나는 ‘창피함’이라는 감정을 내 인생의 한 시기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감정은 지나간다. 다만 그 감정을 견디는 나의 태도는 내 안에 남는다. 창피함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했던 시간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결론: 직업이 사라져도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퇴사 후 불안보다 창피함이 더 무서웠던 이유는, 그 감정이 나의 자존감과 정체성 깊숙한 곳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창피함은 내 안의 낡은 기준을 깨뜨리는 기회이기도 했다. 직업이 없다고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일 없이 존재하는 나’를 발견했다.

혹시 지금 퇴사를 고민하거나, 퇴사 후 창피함에 움츠러든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지만, 분명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닌, ‘나에게 잘 보이는 삶’을 배워가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회복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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