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를 쓰기까지, 퇴사를 결심하기까지는 오래 걸렸다. 지쳐도 참았고, 모욕을 당해도 넘겼다. 그저 ‘버티는 것이 성숙’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표를 쓴 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지막 남은 끈을 끊었다. 생각보다 사소했지만, 너무도 분명했던 그 말. 사표를 쓴 날의 그 직전, 나는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1. '그 정도는 참아야지'라는 말의 폭력성
① 반복되는 야근, 감정은 말라가고 있었다
그해 여름, 나는 거의 매일같이 야근을 했다. 주말에도 회사에 나왔고, 메신저 알림은 새벽에도 멈추지 않았다. 몸은 피곤했고, 마음은 점점 말라갔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프로젝트만 넘기면 괜찮아질 거야.” 자신을 다독이는 말은 어느새 자기를 속이는 말이 되어 있었다.
② ‘그 정도는 다 그래요’라는 상사의 말
회의 중,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즘 조금 힘들어서... 주말에는 조금 쉬고 싶습니다.” 그때 상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다 그래요. 그게 힘들면 이 일은 못 하죠.”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말은 ‘너는 예민하다’, ‘지금 힘들다고 느끼는 건 과한 감정이다’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그 말은 내 감정을 부정했고, 내 존재를 무시했다. 그게 사표를 쓰게 만든 마지막 한마디였다.
2. 사표를 쓰는 손은 떨렸지만, 마음은 조용했다
① 회사 밖으로 나오는 내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
퇴사를 한다는 것은 내 삶에서 회사라는 중심축을 없앤다는 뜻이었다. 동료들과의 관계, 매달 들어오던 월급,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이름. 그 모든 것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표를 쓰는 손은 떨렸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민감한 건 아닐까. 불안이 뒤따랐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마음은 조용했다. 마치, 그 말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해준 것처럼.
②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감정이 나를 밀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알았다. 이 조직에서는, 이 환경에서는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없고, 보호받을 수도 없다는 걸.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처음으로 ‘이 정도는 참아야지’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다. 그 말은 퇴사보다 더 위험한 말이었다. 그 말을 멈추는 것, 그게 내 감정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3.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달라졌다
①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게 되었다
퇴사 후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왜 나왔어? 너무 갑작스러웠는데.” 예전 같았으면 나는 조목조목 설명했을 것이다. “야근이 많았고, 스트레스도 있었고...”
하지만 나는 단순히 말했다. “이제는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될 순간이었어요.”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지쳤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했던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나 자신을 더 이상 설득하지 않기로 했다.
② 나는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 말 이후로, 나는 내 감정을 다시 바라봤다. 예민한 게 아니라, 정상적인 반응이었음을. 무례함에 상처받는 것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인간적인 감각이었다.
그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내 감정을 감추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는 누군가를 움직이고, 그 움직임은 결국 삶을 바꾼다. 나는 그 말을 통해 회복이 시작되었다.
결론: 누군가의 한마디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지금도 나는 가끔 그 말을 떠올린다. 그 정도는 다 그렇다고, 예민하다고, 참아야 한다고 말했던 그 짧은 한마디.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 말에 반응한 내가 잘못이 아니었다. 그 말에 멈추지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 내가 옳았다는 것을.
혹시 지금, 누군가의 말 한마디 앞에서 무너질 것 같은 당신이 있다면, 기억해 주세요. 당신은 잘못된 게 아닙니다. 그 말이 틀렸고, 당신의 감정이 옳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