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뭘 새로 시작한다고? 너무 늦었지 않나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니었지만, 내 안의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이 오십. 많은 것에 익숙해졌고, 많은 것을 지나왔다. 하지만 처음으로 ‘새로운 재능’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 나는 놀랍도록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세상이 말하는 ‘재능’이란, 사실 너무 협소하고 무례한 개념일 수도 있겠다고. 이 글은 내가 늦게 시작했지만, 그 늦음 속에서 발견한 나만의 감각과 가능성에 대한 기록이다.
1.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는 믿음의 벽
①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는 자기 검열
나는 한 번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었고, 글을 써서 상을 받은 적도 없다. 무대에 서본 적도, 악기를 배운 적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말해왔다. “나는 예체능 쪽은 아니에요.” “나는 감각적인 재능은 없어요.” 그런데 그 말들이 정말 ‘사실’이었을까? 아니면 ‘해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오십이 되어 처음으로 아크릴 붓을 잡고, 아무 생각 없이 선을 긋는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끌어올려지는 것’일 수 있다는 걸.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몰랐던 것들이었다.
② 재능은 빠르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것이다
우리는 재능을 '금방 잘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오십의 나는 ‘빨리 잘하고 싶은 욕심’보다, ‘꾸준히 하고 싶은 마음’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예전에는 금세 익숙해지지 않으면 ‘난 이건 아닌가봐’라고 포기했다면, 지금은 ‘오늘은 여기까지구나’라고 말한다. 그 여유가 바로 ‘늦은 재능’의 발현을 가능하게 한다. 오래 해보고 싶은 감정, 그게 곧 재능일지도 모른다.
2. ‘늦은 나이’라는 프레임을 넘어서다
① 오히려 지금이 가장 감각이 선명한 시기
나이가 들수록 감각은 무뎌진다고 하지만, 나는 그 반대를 경험했다. 오십이 되자, 나는 처음으로 ‘내가 무엇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인지’를 알게 됐다. 어떤 단어에 끌리고, 어떤 장면에 오래 머무는지. 젊었을 땐 스쳐 지나갔던 것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만큼 감정이 더 섬세해졌다.
재능이란 결국 ‘자신만의 감각’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삶을 오래 살아온 만큼, 내가 가진 감각의 폭과 깊이는 오히려 더 크다. 지금의 나는 감각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② 나이 들수록 ‘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힘’이 생긴다
예전에는 시작도 전에 결과를 걱정했다. 잘못하면 어쩌나, 비웃으면 어쩌나.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그래서 뭐?’라는 태도가 생겼다. 오십의 나는 완벽하려는 마음보다,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써보는 실험정신’에 더 매력을 느낀다.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된다. 늦게 시작했으니, 더 천천히 가도 괜찮다. 이 자유로운 태도가 바로 ‘늦은 재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3. 새로 꺼내본 나만의 감각, 그것이 재능이었다
① 글쓰기, 그저 말이 많았던 나에게 생긴 변화
나는 수다스러운 사람이었다. 말이 많은 걸 단점처럼 여겼고, 늘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문득 그런 내가 쓴 일기 몇 줄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었다. “이거 에세이 같아요.” “이런 거 계속 써보세요.” 그 말이 나에게는 ‘새로운 문’이었다.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 안에는 이미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자라고 있었다. 글쓰기라는 통로를 몰랐을 뿐이다.
② 재능이란, ‘지속하고 싶은 감정’이 만들어낸 결과
지금 나는 블로그에 매주 글을 올린다.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솔직히 쓰려고 애쓴다. 독자 수가 늘지 않아도, 좋아요가 없어도 계속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건 ‘재능’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해보니 좋고, 좋으니 또 하고 싶고, 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진다. 그게 바로 ‘늦은 재능’의 정의 아닐까?
결론: 늦게 핀 감각이 더 깊다
우리는 종종 묻는다. “지금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속삭인다. “이 나이에 무슨.”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오히려 이 나이기 때문에, 시작해볼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한 ‘늦은 재능은 없다’는 말은 틀렸다. 늦게 피는 감각이 있고, 나이 들어서야 시작되는 일이 있다.
재능은 누가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붙잡고 싶은 감정이다. 나이 오십, 내 인생의 후반전을 위해 처음 꺼내든 붓과 펜, 그리고 내 감각. 그게 바로 나의 ‘늦은 재능’이다. 당신도 혹시 지금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는 재능’이 있다면, 한 번 꺼내보길 바란다. 늦었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이 시작이다.